EXHIBITIONS
금보성 개인전
《한글》
2024.10.1 - 10.10
자하미술관
금보성 작가에게 한글이란?
곧 한글날이 다가온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했지만, 사대부들은 여전히 한자를 주로 사용하면서 궁궐에서는 잘 쓰지 않는 한글을 권장하기 위해 왕이 내린 명령이나, 왕비와 공주 서사상궁들이 글과 편지를 한글로 쓰도록 했다. 훈민정음 28개의 자음과 모음을 운용하여 여인내들이 “세상의 모든 사연”을 기록해 온 그야말로 획기적인 문자가 한글이다.
문자를 활용한 작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붓의 나라 조선에서는 조선중기에서 후기 무렵 보기에도 맵시 있고 단정한 “궁체”라는 아름다운 글씨체가 만들어졌다. 근대에도 서(書)가 예술인가?라는 문제에 늘 봉착해왔고 해방 후 에야 소전 손재형에 의해서 글씨가 예술이 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서예의 현대화에 앞장선 분들 중에 평보 서희완이 한글서예로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였지만 서예가 갖고 있는 의미전달 수준으로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현대작가중 남관이나 이응노선생이 표현주의류의 독창적인 서체추상과 정적이면서 의미있는 필선이 모인 예술적인 문자추상으로 획의 근육과 뼈대를 구축해가며 한글을 회화작품으로 시도했지만, 본격적인 문자 회화로 발전시키는 데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황창배 오수환을 비롯해 한글 서예의 경계 넘기에 독보적인 디자인적 서체, 아방가르드적 서체, 캘리그라피등으로 바꾸려는 일련의 시도는 있었지만 회화나 입체 작업의 소재로 한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는 없었다.
금보성 작가는 시를 쓰는 시인이라 시어는 늘 그의 탐구 대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글에 색을 입히고 싶다는 충동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한글 회화화를 시도하면서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한글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한글이야 말로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정신이며 겨레의 얼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글을 통하여 한국인의 문화 DNA를 깨우치고자 하는 신념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정신속에 깔려있는 철학적 개념을 깊이 사유하고 한글이 단순한 문자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미학적으로 접근하고 재해석한 후 작품으로 녹여낸다. (예 : 음 “ㅎ” 의 구조는 하늘, 사람, 땅을 하나로 잇는 '천지인'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ㅎ”이 지닌 의미를 "큰(大)”로 확장시키는….)
한글작품은 작가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한글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깊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한다는 매력을 지니게 된다. 자음과 모음의 다양하게 변형된 창작행위야 말로 매일매일 입속으로 흡입된 음식물을 몸이 작동하여 흡수하고 응축된 배설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그의 방대한 작업량과 치열한 한글작업은 억제된 폭발처럼 절정에 이르렀다.
한반도에서 한글만을 테마로 작품에 매진하는 작가는 그 밖에 없다. 그가 한글 회화의 원조가 되겠다는 오롯한 마음과 각오로 전시를 발표해온지 벌써 40년 되었으며 자하미술관의 초대전도 xx번째가 된다. 그야말로 한글회화에 매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질 들뢰즈는 “머리는 교환의 기능이지만 심장은 반복을 사랑하는 기관이다”라 했다. 그의 작업은 예술과 삶의 방식에서 세속적인 목표를 향해 가는지 혹은 수행적인 실천의 결과물인지 그 만이 알겠지만, 한글이 바로 예술이라고 확인하면서 지금도 한글만을 고집하여 독보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
金公移山.
자하미술관
관장 강종권
작가의 말
한글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아온 여정에 내가 참여하게 되어 감사할 뿐이다. 한글이 단순한 소리 문자를 넘어선 한국적 정신과 미학의 심층적 탐구로 확장이 진행 중이다. 첫 전시 후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될 줄 몰랐고, 내가 했다기 보다 한글이 둔한 나를 선택하였다고 이제야 알 것 같다. 서양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동양의 정신문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한국적 전통과 현대성을 결합하여 새로운 미술적 표현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한글이라는 기호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적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신명, 흥, 단아함, 풍류, 자연, 배색, 음양오행, 해학과 같은 키워드는 한국적 미의식과 철학을 응축한 개념들이며, 이를 작품에 어떻게 구현해왔는지 순간마다 지혜를 주었으며, 한글창제 원리가 자연과 인간의 소통이며, 현대회화에 있어서 배색, 음양오행의 원리 등을 통해 자음의 속뜻을 깨닫게 하고 작업의 방향을 순간마다 확장시킨 것 역시 한글의 기운인 듯 싶다. 전통적인 삶과 지혜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한국적 철학이 깃든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동양적 사유와 미감이 현대 회화의 언어로 어떻게 변형되고 재해석될 수 있는지 길을 인도하여 쫓아 온 듯 하다. 남은 내 여정도 한글이 붙잡아 주었으면 싶다.
어려서 시를 쓰게하고 시의 문자를 색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시 한글의 원리를 맛보게 하려고 우리전통과 철학에 입문하고 산업의 반도체 같은 한글을 위해 자음과 모음의 속내같은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또 무엇을 위해 쓰임받게 될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즐거움도 행복하다.
해학과 풍류는 단순한 유머나 즐거움이 아닌, 인생의 깊이와 자연과의 조화를 드러내는 요소이다. 신명과 흥은 작품 속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음양오행과 같은 전통적인 사상 체계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라는 기호적 요소와 연결되어, 우주의 조화와 순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회화적 어법을 독학하게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글 작업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순례이며, 현대적 미학과의 접점을 찾는 여정으로 볼 수 있으며, 동서양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 현대미술의 독립적 위치를 확립해 나가고 있다는 것도 내가 아닌 한글의 기운인 듯싶다.
단순히 문자의 변형이나 기교 기법적인 것이 한글 회화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서양적 회화가 가진 요소들을 차용하는 모방이나 표절이 아닌 늦더라도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 인간과 소통하는 것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금보성